
= 시간순으로 된 사건 총정리와 부디 변하길 바라는 미래에 대하여

사이먼 가라사대 Simon Says
세례자가 말하는 당신의 나아갈 길에 대하여.
너른 공터에서 추위를 불사르는 불꽃이 타 들어가고 있었어요. 그런데도 추위를 잔뜩 타는 고양이처럼 모포를 두껍게 두른 세례자는 긴 꼬챙이로 모닥불을 들쑤셔 좀 더 불을 일으킨 뒤에야 주변에 적당히 둘러 앉은 제자들에게 하던 말을 이었습니다.
“ 어디까지 말 했더라. 아 그래. 그래서 1차 아마게돈은 널리 알려진 역사로 남아 있지만 2차 아마게돈은, 맞아. 너희가 발 딛고 살고 있던 머리 위에서 일어난 일이지. 너희가 겪었던 그 재난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이유로 역사에 정식으로는 기록되지 못하고 잊혀졌다.
그 위기를 막아낸 것은 마탄의 사수. 그 어떤 네피림들도 할 수 없었던, 천사의 힘을 일부나마 다룰 수 있는 자 들이야. 나와 같이 헤일로를 지닌 이 들. 아, 내 양 날개? 이 건 뭐랄까, 덤 같은거고. 여하튼 이 땅에 강림한 두 명의 천사에게서 비상의 권능을 받아 하늘을 자유 자재로 가로지르며 인간을 초월하는 힘이 담긴 마탄을 퍼붓던 그 들이었기에 소수 정예로 예정된 2차 아마게돈을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너희들의 현재로부터 그리 먼듯, 멀지 않은듯한 훗날 예상치 못하게 다가온 3차 아마게돈은 막지 못했어. 이런 힘을 지녔으면서도.”
붉은 그림자가 너울대며 씁쓸한 표정을 비추는 얼굴로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세례자는 제자들 사이에 비집고 앉아 여러분과 똑같은 모습으로 말했습니다.
“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예정되지 않은 때 지옥의 문이 열려 버렸고, 그 곳에서부터 쏟아져 내린 마귀들은 가장 먼저 네피림을 찾아내 도륙하는 것 부터 시작했다. 지난 1차와 2차 아마게돈에서 교훈을 얻은 거지. 네피림이 자신들의 숙원을 방해하는 존재 라는 것을 확실하게 안 거야.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동족들은 스스로와 가족을 위해 처절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순식간에 각개격파 당하여 죽어갔다.
지상에 홀로 남아 계시던 천사께서 어떻게든 살아남은 네피림을 끌어 모아 반격을 시작했지만 이미 멸종한 거나 다름 없는 우리들로는 역부족이었어. 영체 무기를 꺼낼 수만 있다면 나 같은 다 늙어 은퇴한 영감도 천사께 두 번째 세례 를 받고 당장 전장에 나서야 할 정도였으니까. ”

새파랗게 어린 얼굴에 늙은이 같은 말투의 세례자는 먼 훗날에 다가올 끔찍한 미래를 마치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의 일처럼 말했습니다. 아니 어쩌면 예언이라 하기도 그렇겠어요. 세례자에게는 그 것은 예지가 아니라 체험이었으니까요.
“ 모든 것이 늦어 버렸어. 그 뒤 본격적으로 인간을 잡아 먹으며 힘을 불린 마귀들이 파죽지세로 밀어닥쳐 인류는 북극선 너머까지 쫓겼고 멸망만을 기다리고 있었어. 하지만 주 께서는 한 줌 남은 당신의 자식들 마저 버리지 않으셨다. 그 분께서는 천사께 계시를 내리어 대홍수를 일으키시기 전의 마지막 기회이자 수단을 주셨지. ”
세례자의 눈동자에 모닥불의 불빛이 어른거려 본래의 색 대신에 노란 불꽃이 피어오른 것 같았습니다. 그가 혼잣말 하듯 다소 낮아진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 일단, 마탄의 사수는 아무나 되는게 아냐. 천사께서는 내게 기준을 말씀 해 주시지 않았지만 네피림 중 극히 일부만 마탄의 사수로 각성시킬 수 있다고 하시더군. 어떤 자질이 필요한가 봐. 그렇다보니 인간에게 주어질 억제력으로서 유효한 수준의 숫자가 되지 못했어.
그래서 천사께서 찾아낸 차선책이 바로 우리 혈통의 순수성을 최대한 불러 일으켜 우리들 본연의 힘을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이 것 역시 아무나 가능한 건 아니지만 마탄이라는 특별한 힘을 쓰는 극소수보다, 300여년 전 처럼 각 지역에서 우리가 스스로 이 땅을 감시하며 악마의 군세를 물리칠 수 있게 할 정도는 될테니.
그래… 선조부터 지닌 채 내려와 너희들의 안에 잠들어 있는 그 힘. 이미 늦어 실현이 불가능 하다면, 그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기적이요 주의 은총이지. 시간을 거슬러 돌아가 새로운 힘을 키울 요람을 만들라 하시었다. ”
어느 새 고개를 들어 주변에 둘러 앉은 제자들의 면면을 하나 하나 응시하며 말하던 세례자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는 제자들의 주변을 한바퀴 빙 돌아 걸어 그 들이 모인 이 약속의 땅에서 처음부터 세례자와 함께 여러분을 기다리던 한 사람의 뒤에 멈춰섰습니다. 자리에 앉은 그 사람의 어깨에 손을 짚은 세례자가 진중한 어조로 선언했습니다.
“ 이제 주의 권능을 빌어 내가 너희에게 원초의 혈통속에 잠든 힘을 깨울 수 있는 특별한 세례를 베푸나니, 이 후부터 나를 스승으로 따르라. 그리고 이 자는 너희 생도들 모두가 걸어 갈 길을 가장 먼저 나아간 자이며 도착점이니 마땅히 이 자를 너희의 사형으로 여기어라. 너희는 처음의 사도인 이 자를 본 받아 그 힘을 다루는 가르침을 받고 그 시절 원초의 힘을 익히도록 하라.
그런 너희가 한 명의 어엿한 사도가 된 뒤에는 내가 베푼 그 특별한 세례를 너희 역시 사용할 수 있게 될 터. 이윽고 너희가 스스로 너희의 제자를 길러 세를 불려나갈 시작의 사도로 거듭나면 다가오는 멸망을 감시하는 파수꾼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새로이 개찬된 미래에서 예정된 비극이 사라지면, 그 증거로 이 땅에서 사라지게 될 나의 빈 자리를 성장한 너희로 대신하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