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시절, 아마게돈 Armageddon
300년 전, 그저 역사의 한 자락에 대하여.
지금으로부터 약 300여년 전. 세상 어딘가의 하늘에 불현듯이 지옥의 문이 열렸다. 그 곳에서부터 쏟아져 나온 악마들은 종말의 날 처럼 인간들을 죽이고, 타락시키고, 멸망으로 이끌어갔다. 인간은 마귀에게 어떠한 반격도 할 수 없으며 그저 마귀의 희생양이 될 뿐.
그러나 지옥의 마왕의 대칭에 선 천상의 성신은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가는 악마의 군세를 막기 위한 자신의 군세를 내리는 것을 주저했다. 본래 마와 성의 힘은 대칭에 서면서도 유사한 것. 이 지상은 둘을 구분없이 합하여 일정 이상의 힘이 가해지면 손쉽게 무너지고 그 것은 지상 생물의 대멸종을 가져온다. 힘의 범람, 홍수. 지옥의 군세를 토벌하고자 이미 마의 힘이 넘치는 지상에 자신의 힘 마저 더하면 그저 땅만 빼앗기지 않을 뿐, 자신의 피조물-인간은 모조리 절멸하고 말 것이기에.
결국 성신은 자신의 군세, 천사들 중에서 극히 일부만을 내려 보내게 되었다. 이 소규모의 천사들은 지옥의 문을 닫는데 총력을 기울이며 동시에 마귀에게 그 어떤 반격도 할 수 없는 인간들에게 저항할 힘을 주고자 그 들과 피를 섞어 천사-인간의 혼혈, 네피림을 만들었다.
인간의 시간으로 약 20여년 뒤, 강림한 천사들은 전원 자신을 희생하여 지옥의 문을 닫는데 성공했지만 지상에 창궐한 마귀는 여전히 그득히 넘쳐났다. 이제 지상에서 유일하게 마귀에 대적할 존재들은 천사와 인간의 후손, 네피림 뿐. 삶을 위한 그들의 활약으로 수백년에 걸쳐 악마들은 서서히 수가 줄어 들었다. 이 것을 제 1차 아마게돈이라 하며 모든 인간들의 역사에 새겨진 일이 되었다.
1차 아마게돈 당시엔 네피림들이 천사를 도와 악마를 물리치며 인류를 구했으나 천사들이 모두 죽어 사라진 뒤에 악마를 공격할 수 있는 건 네피림 뿐이었기에 인류는 그 들에게 의지했다. 하지만 지옥의 문이 닫힌 뒤에 세상에 악마는 점점 줄어 들어가고 인간은 더욱 번영해 갔으며 네피림의 피는 서서히 옅어졌다. 한 때 영웅이라 불리기도 했던 그 들 네피림은 이제, 인간들 사이에서 인간과 다름 없이 평범하게 살아간다. 대부분은.

1차 아마게돈 이후의 네피림, 그 들의 요즈음…
시간이 흘러 과학이 발전하여 생존이 천박한 농담이 되는 시절이 온 지금. 오랜 세월 꾸준히 토벌된 악마의 세력은 이제 보잘 것 없어서 악마에 의한 인간의 상해 사건은 일주일에 한 두 건 정도. 그 것도 악마가 직접 행사하는 일 은 없지야 않지만 드문 정도고 대체로 잡귀 들린 인간이 갑작스레 경, 중범죄를 저지르는 식 이다.
이런 형편이다보니 네피림은 과거 1차 아마게돈 때에는 인류의 구원자와 영웅으로도 불리웠으나 지금은 위상이 대단히 격하 되었다. 여전히 이 들 없이는 악마를 퇴치할 수 없으니 인류는 그 들을 홀대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해서 특별히 우대해 주지는 않고 악마 퇴치에 약간의 금전적 댓가를 지불하는 정도. 없어서는 안 될 고마운 이웃, 조금 특이한 기술을 가진 인간, 동네 해결사, 해충 구제인 등등으로 취급한다.
악마는 주로 인구 밀집 장소에 몰려드는 경향이 있으므로 대도시일수록 악마 사건 발생율이 높다. 도시에서 부지런히 악마 퇴치 활동을 하면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에 보통 샐러리맨 월급을 몇 배 상회하는 만큼 벌 수도 있으나 한적한 시골에서는 한 달에 한 건 나올까 말까 하니 별로 매력있는 직업은 아닌 셈. 그러다보니 각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악마 퇴치 대신에 다른 생업을 갖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나마 사적으로 해결사 개업 활동을 하는 각성 네피림을 사람들은 속된 말로 처형인 The Punisher 라고 부르기도 한다.
현대 네피림 혈통의 수는 전 세계 60억 인구의 1% 미만 인 약 500만, 각성 네피림의 수는 0.1% 미만 인 50만 정도로 추정된다. 미국 정부의 통계로는 자국 내 각성 네피림의 수는 약 4만 가량. 50개의 주에 대략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 정부 기관에서 네피림과 악마 사건을 관할하는 기관은 없으며 범죄 발생시엔 처형인들에게 따로 의뢰하는 정도.